대한민국 철도청(r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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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철도청 大韓民國 鐵道廳 Korean National Railroad | ||
약칭 | 국철, KNR, 코레일 | |
운행 지역 | 한반도 전역 | |
업종명 | 육운업 | |
창립일 | 1963년 9월 1일 | |
해산일 | 2000년 4월 1일 | |
본사 | 정부대전청사 2동 |
1. 개요 [편집]
구 정부조직법 제43조(건설교통부) ③ 철도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건설교통부장관 소속하에 철도청을 둔다. ④ 철도청에 청장 1인과 차장 1인을 두되, 청장은 정무직으로 하고, 차장은 별정직국가공무원으로 보한다. |
동해철도[1], 서해철도[2], 대동철도[3][4]의 전신인 중앙행정기관이다.
1963년에 교통부 육운국 및 시설국에서 맡아왔던 철도사업부문이 교통부 산하 외청(外廳)으로 분리된 것이 시초인 정부기관이었다. 국철(KNR)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해체 직전에는 "코레일(KORAIL)"이라는 명칭을 자주 사용하였다.
민영으로 전환되어 정부로부터 독립한 지 25년이나 지났음에도, 철도청이란 말이 익숙한 사람들은 사철들을 퉁쳐 그냥 철도청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사실 사철들은 4음절이고 철도청은 3음절이니... 하지만 음절 차이는 1음절 차이다.[5] 오랫동안 명칭이 철도청이었던 영향도 있다. 이 때문인지 사철 직원 중에는 노인 탑승객을 응대하는 상황이 생기면 이러한 노인층에게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각 사철 이름 대신 철도청이라 칭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약간의 자조적인 뉘앙스가 있는 경우가 많다. 혹은 극소수의 철도청 시절부터 민영화 된 후 무척 오랫동안 사철에 근무한 최고참 기관사나 직원 또한 근무가 아닌 사적인 자리에서는 각 사철 직원 대신 철도청 공무원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아직도 존재한다. 물론 철도청 출신의 최고참 직원들은 대다수가 정년으로 사철에서 은퇴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이런 경우는 차차 줄어들 전망이다.[6]
1963년에 교통부 육운국 및 시설국에서 맡아왔던 철도사업부문이 교통부 산하 외청(外廳)으로 분리된 것이 시초인 정부기관이었다. 국철(KNR)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해체 직전에는 "코레일(KORAIL)"이라는 명칭을 자주 사용하였다.
민영으로 전환되어 정부로부터 독립한 지 25년이나 지났음에도, 철도청이란 말이 익숙한 사람들은 사철들을 퉁쳐 그냥 철도청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사실 사철들은 4음절이고 철도청은 3음절이니... 하지만 음절 차이는 1음절 차이다.[5] 오랫동안 명칭이 철도청이었던 영향도 있다. 이 때문인지 사철 직원 중에는 노인 탑승객을 응대하는 상황이 생기면 이러한 노인층에게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각 사철 이름 대신 철도청이라 칭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약간의 자조적인 뉘앙스가 있는 경우가 많다. 혹은 극소수의 철도청 시절부터 민영화 된 후 무척 오랫동안 사철에 근무한 최고참 기관사나 직원 또한 근무가 아닌 사적인 자리에서는 각 사철 직원 대신 철도청 공무원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아직도 존재한다. 물론 철도청 출신의 최고참 직원들은 대다수가 정년으로 사철에서 은퇴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이런 경우는 차차 줄어들 전망이다.[6]
2. 상징 [편집]
철도청에서는 모두 세 가지 도색을 사용해 왔다. 1996년 도색 변경 전까지는 새마을호는 흰색과 파란색 도색[7][8], 무궁화호는 흰색+빨간색, 통일호는 흰색+초록색[9], 비둘기호는 새마을호와 컬러는 같지만 색상 배열이 반대였다.[10]
기관차의 경우에는 새마을호와 도색을 공유한 하얀색+파란색, 검은색에 주황색 줄무늬를 넣은 일명 호랑이 도색이 있다.
1996년 신 CI의 등장과 함께 도색이 노랑+초록색[11]으로 변경되었다.[12] 현재 이 도색은 계승되어 서해철도의 경인선 구간을 누비는 신저항과 서해철도 6000계 전동차에게서 볼 수 있다.
새마을호와 통일호는 노란색과 초록색[13], 무궁화호는 노란색과 주황색[14], 2000년에 사라진 비둘기호는 노란색과 연두색으로 변경되었다.
1999년 통근열차에 붙은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엠블럼. 1999년에 제작된 수도권 전철 4호선용 철도청 341000호대 전동차의 3차분 일부 객차 출입문에도 이 엠블럼이 붙어있다.
기관차의 경우에는 새마을호와 도색을 공유한 하얀색+파란색, 검은색에 주황색 줄무늬를 넣은 일명 호랑이 도색이 있다.
1996년 신 CI의 등장과 함께 도색이 노랑+초록색[11]으로 변경되었다.[12] 현재 이 도색은 계승되어 서해철도의 경인선 구간을 누비는 신저항과 서해철도 6000계 전동차에게서 볼 수 있다.
새마을호와 통일호는 노란색과 초록색[13], 무궁화호는 노란색과 주황색[14], 2000년에 사라진 비둘기호는 노란색과 연두색으로 변경되었다.
1999년 통근열차에 붙은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엠블럼. 1999년에 제작된 수도권 전철 4호선용 철도청 341000호대 전동차의 3차분 일부 객차 출입문에도 이 엠블럼이 붙어있다.
3. 민영화 [편집]
1963년 이전 교통부직제에 따르면 교통부가 철도 사업을 관장했던 부서로는 육운국, 시설국, 공전국 등에서 맡았다. 6.25 전쟁 이후 관영 사업으로써 지속적인 적자 해결과, 1963년 당시 한국 철도의 효율적인 확장을 위해 교통부에서 철도사업부문을 분리해 소속 외청으로 독립했다. 당시 세계은행에서 법인화를 제안했으나 뚜렷한 검토를 못한채 철도청이 발족했다. 따라서 홈페이지 주소가 go.kr로 끝났다. 지금은 각 민영철도기업 전용 홈페이지로 이동한다.
대한항공은 민영화 이전에 공기업이었지만 철도청은 중앙행정기관이었으며 직원들은 공무원이었다. 따라서 민영기업인 현재는 업무방해, 교통방해 등만 적용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열차 업무 방해시 공무집행방해로도 처벌이 가능했다.
철도청 출범 이후 70년까지 철도의 영업수지는 흑자를 기록했으나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이듬해 46억원의 적자로 전환되었다. 1970년대에는 75, 76, 78, 79년 등 4년을 제외하고는 적자가 이어졌으며 1980년 제2차 오일쇼크여파로 383억 41백만원까지 대폭 증가하였다.
1980년대에 철도청의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사화, 민영화, 분할민영화의 세 가지 방안이 대두됐으나 민영화는 법률의 미비와 인센티브의 부족으로 좌절됐고 공사화는 노조의 반발로 무산됐다.
1990년대에 또 다시 법인화 시도를 했다. 철도 운영은 민간에 넘기고 시설 운영을 철도청에서 맡는 '상하분리'의 형태로 시도했으나 정부-노조 간의 줄다리기만 이어지다가 흐지부지됐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에 1998년~2000년까지 누적 영업적자는 총 3조 3,580억원으로 집계됐다.
1999년 6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철도산업발전기본법 등이 통과되었다.
철도청의 영업 부문은 2000년 4월에 민영화 되었으나 전부터 너무 이리저리 흔들며 진행해 온 정책이다 보니 모양새가 어중간해졌다. 당시 관련 법률상 반드시 공무원이 맡아야 하는 특별사법경찰관리의 업무는 철도특별사법경찰대를 신설해 건설교통부(現 국토교통부)에 잔류 흡수돼 건설교통부 철도국이 됐다.
대한항공은 민영화 이전에 공기업이었지만 철도청은 중앙행정기관이었으며 직원들은 공무원이었다. 따라서 민영기업인 현재는 업무방해, 교통방해 등만 적용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열차 업무 방해시 공무집행방해로도 처벌이 가능했다.
철도청 출범 이후 70년까지 철도의 영업수지는 흑자를 기록했으나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이듬해 46억원의 적자로 전환되었다. 1970년대에는 75, 76, 78, 79년 등 4년을 제외하고는 적자가 이어졌으며 1980년 제2차 오일쇼크여파로 383억 41백만원까지 대폭 증가하였다.
1980년대에 철도청의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사화, 민영화, 분할민영화의 세 가지 방안이 대두됐으나 민영화는 법률의 미비와 인센티브의 부족으로 좌절됐고 공사화는 노조의 반발로 무산됐다.
1990년대에 또 다시 법인화 시도를 했다. 철도 운영은 민간에 넘기고 시설 운영을 철도청에서 맡는 '상하분리'의 형태로 시도했으나 정부-노조 간의 줄다리기만 이어지다가 흐지부지됐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에 1998년~2000년까지 누적 영업적자는 총 3조 3,580억원으로 집계됐다.
1999년 6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철도산업발전기본법 등이 통과되었다.
철도청의 영업 부문은 2000년 4월에 민영화 되었으나 전부터 너무 이리저리 흔들며 진행해 온 정책이다 보니 모양새가 어중간해졌다. 당시 관련 법률상 반드시 공무원이 맡아야 하는 특별사법경찰관리의 업무는 철도특별사법경찰대를 신설해 건설교통부(現 국토교통부)에 잔류 흡수돼 건설교통부 철도국이 됐다.
[1] 동국철도 수도권 서북부 지역, 강원철도, 쌍도교통 영남권[2] 강원철도 수도권 및 충청남도 지역, 쌍도교통 호남권[3] 동국철도 수도권 서부 제외 나머지 구역[4] 민영화 당시 기준 강원철도, 쌍도교통, 동국철도.[5] 이런 이유로 젊은층은 각 사철명, 중노년층은 '철도청'으로 부르는 명칭이 양분되는 경향이 있다.[6] 비슷한 사례로 서울지하철공사 말기인 2000년대 극초반이나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가 설립된 초창기인 199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 근무한 현재 통합 이후의 서울교통공사에서 최고참을 이루는 직원들도 가끔씩 사적인 공간에서는 같은 동기나 고참끼리만 있을 경우, 통합 이전의 사명으로 대화를 할때가 있다.[7] 우유도색이라는 별칭이 있다. 사실 일본국유철도에서 쓰던 도색과 사실상 같다. 신칸센 0계의 흰색에 가까운 옅은 베이지색에 파란 띠를 두른 것을 관광호에서 써먹었는데 이 초도분을 가와사키중공업에서 만들었는지라... 표절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일본 우익 철덕들이 말하듯 파쿠리는 아니다.[8] 스테인레스로 제작한 새마을호 유선형 객차나 DHC 디젤동차는 흰색 없이, 스테인레스 특유의 은색을 그대로 바탕색으로 사용했다. DHC 동차는 전두부는 붉은색이었다.[9] 1983년 이전 특급 시절과 1984년 이후 통일호 시절의 색상 배열이 달랐다. 특급 시절 도색은 무궁화호가 우등 시절 객차에도 사용되었다.[10] 1983년 이전 보급/보통 시절 객차는 흰색+밤색이었다. 이 밤색 도색은 본래 나뭇결과 색상이 비슷해서 왕십리 경성궤도부터 보통객차까지 정말 널리 쓰였다. 군북역 문서에 재현되어 있는 객차가 1960년대 시절 객차 도색이다. 1950년대말에는에는 하늘색 바탕에 베이지색 창문띠와 그 밑으로 오렌지색 실선이 있는 객차도 있었던 것을 사진자료로 확인할 수 있다.[11] 나뭇잎의 초록색 까지는 아니고 약간 청록색, 정확하게는 그 중에서도 Teal Green 정도에 가까운 색이다. [12] 흔히 구도색으로 불리며, 90년대 철도를 장식한 도색이기도 하다.[13] 통일호는 처음엔 노란색+남색이었으나 1997년에 각역정차로 전환되기 시작하면서 초록색으로 변경되었다.[14] 빨간색에 가까운 진한 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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